효모와 주모, 사케 발효가 시작되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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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케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쌀과 물, 누룩(코지)을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 재료들이 아무리 잘 준비되어도, 마지막에 효모가 없으면 술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당을 알코올로 바꾸고, 사과와 바나나 같은 향을 빚어내는 주인공이 바로 효모입니다.

그리고 그 효모를 안전하게, 그리고 충분히 많이 키워내는 준비 단계가 있습니다. 일본어로 슈보(酒母), 우리말로 옮기면 주모, 곧 ‘술의 어머니’라 부르는 과정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효모가 사케에서 하는 일, 향을 만드는 원리, 협회효모라는 개성 있는 균주들, 그리고 주모가 왜 사케 발효의 진짜 출발점인지를 차근차근 정리합니다.

효모가 없으면 사케도 없다

사케를 빚는 과정을 한 줄로 줄이면 이렇습니다. 누룩이 쌀의 전분을 당으로 바꾸고, 효모가 그 당을 먹어 알코올과 탄산가스로 바꿉니다. 앞의 절반을 당화, 뒤의 절반을 알코올 발효라고 부릅니다. 이 두 가지가 같은 통 안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 사케 발효의 큰 특징입니다.

효모는 아주 작은 단세포 미생물입니다. 사케에 쓰이는 효모는 학명으로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시아(Saccharomyces cerevisiae)라는 종으로, 빵이나 맥주를 만드는 효모와 같은 종에 속합니다. 다만 오랜 세월 사케 양조에 맞게 골라낸 균주라,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그리고 알코올이 높아지는 환경에서도 끈질기게 일하는 성질을 지녔습니다.

쌀도 좋고 물도 좋고 누룩도 잘 만들어졌다 해도, 발효를 이끄는 효모가 건강하지 않으면 좋은 술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양조가들은 예로부터 효모를 어떻게 준비하고 키우느냐에 가장 큰 공을 들여왔습니다.

효모가 하는 일, 당을 알코올과 향으로

효모의 가장 기본적인 일은 당을 먹고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내놓는 것입니다. 포도당 한 분자가 대략 알코올 두 분자와 이산화탄소 두 분자로 바뀌는 반응인데, 이 과정에서 열도 함께 나옵니다. 사케 발효가 진행되는 통 위로 뽀글뽀글 거품이 올라오는 것은 바로 이 이산화탄소입니다.

현미경으로 본, 출아하며 증식하는 사케 효모 세포
현미경으로 본 효모. 몸에서 작은 싹이 돋듯 갈라져 수를 늘린다

효모는 발효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수를 크게 늘립니다. 몸에서 작은 싹이 돋아나듯 갈라지는 출아(出芽) 방식으로 증식하는데, 조건이 맞으면 며칠 사이에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 잘 만들어진 주모 속에는 액체 1밀리리터당 수억 개에 이르는 효모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습니다.

효모가 하는 일은 알코올을 만드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발효 과정에서 산(酸)과 아미노산, 그리고 다양한 향 성분을 함께 만들어냅니다. 우리가 사케에서 느끼는 산뜻한 산미, 부드러운 감칠맛, 과일 같은 향의 상당 부분이 효모의 활동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같은 쌀과 같은 물로 빚어도, 어떤 효모를 쓰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술이 됩니다.

사케의 향을 만드는 것도 효모다

긴죠나 다이긴죠를 마실 때 잔에서 사과나 바나나, 멜론 같은 화사한 향이 피어오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이 향을 긴죠향(吟醸香)이라고 부르는데, 놀랍게도 이것은 쌀이나 물에서 오는 향이 아니라 효모가 발효 중에 만들어내는 향 성분입니다.

긴죠향의 주역은 두 가지 에스터라는 향 물질입니다. 하나는 카프론산에틸로, 사과나 청포도, 멜론을 떠올리게 하는 향을 냅니다. 다른 하나는 아세트산이소아밀로, 잘 익은 바나나 같은 향의 정체입니다. 어떤 효모는 사과 계열 향을, 어떤 효모는 바나나 계열 향을 더 잘 만들어냅니다.

이 향들은 온도가 낮을 때 더 잘 살아남습니다. 그래서 긴죠·다이긴죠는 쌀을 많이 깎은 뒤 낮은 온도에서 오래 발효시켜, 효모가 만든 화사한 향이 날아가지 않도록 정성껏 빚습니다. 향이 화려한 사케 뒤에는 언제나 그 향을 잘 만드는 효모와, 그 효모가 일하기 좋은 낮은 온도의 환경이 있습니다.

협회효모, 번호가 붙은 이유

사케 라벨이나 소개 글에서 ‘6호 효모’, ‘9호 효모’ 같은 표현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일본양조협회가 우수한 균주를 골라 전국의 양조장에 나눠 준 협회효모(協会酵母)에 붙은 번호입니다. 1906년 1호가 배포된 이래로, 각기 개성이 뚜렷한 균주들이 번호를 달고 이어져 왔습니다.

일본 양조장 안에 늘어선 사케 발효 탱크
같은 쌀로 빚어도 효모가 다르면 전혀 다른 술이 된다

가장 널리 쓰이는 세 균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것이 더 좋다기보다, 만들려는 술의 방향에 맞춰 고르는 도구에 가깝습니다.

효모유래개성
6호아키타 아라마사 양조장에서 발견(1935년)향이 튀지 않고 차분하며, 발효력이 강해 지금도 쓰이는 가장 오래된 균주
7호나가노 마스미 양조장에서 발견화사한 향과 안정적인 발효, 폭넓게 쓰이는 만능형 균주
9호구마모토에서 나온 균주산이 적고 향이 화려해, 긴죠·다이긴죠 양조의 기준으로 자리 잡음

협회효모 외에도 각 지역 연구소나 양조장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효모가 많습니다. 화사한 향을 극대화한 효모, 산미를 살리는 효모처럼 목적이 뚜렷한 균주들이 계속 나오면서, 사케의 향과 맛의 폭도 그만큼 넓어지고 있습니다.

주모(슈보), 효모를 키우는 어머니

효모가 아무리 좋아도, 발효를 시작할 때 그 수가 너무 적으면 잡균에게 자리를 빼앗기기 쉽습니다. 그래서 본격적인 발효에 들어가기 전에, 건강한 효모를 아주 많이 길러 두는 준비 단계를 거칩니다. 이것이 주모(酒母)이며, 일본어로는 슈보라고 읽습니다. 한자 그대로 ‘술의 어머니’, 곧 사케를 낳는 씨앗 같은 존재입니다. 옛말로는 모토(酛)라고도 부릅니다.

사케 양조장의 발효 탱크, 주모와 모로미를 담아 발효시키는 통
주모는 작은 통에서 효모를 충분히 길러낸 뒤 본발효로 옮겨진다

주모는 찐 쌀, 쌀누룩, 물, 그리고 효모를 작은 통에 함께 넣어 만듭니다. 여기서 며칠에 걸쳐 효모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뒤이어 이어질 큰 규모의 발효를 감당할 만한 튼튼한 씨앗이 완성됩니다. 규모는 작지만, 술 전체의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단계 중 하나입니다.

주모를 만들 때 양조가가 가장 신경 쓰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원하는 효모만 건강하게 잔뜩 키우는 것. 둘째, 그 사이에 잡균이나 야생 효모가 끼어들지 못하게 막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이루기 위한 열쇠가 바로 다음에 이야기할 유산입니다.

주모의 핵심은 유산(젖산)이다

효모는 산성 환경에서도 잘 견디지만, 사케를 망치는 잡균들은 대부분 산에 약합니다. 그래서 주모를 만들 때는 유산(젖산)으로 통 안을 산성으로 만들어 둡니다. 이렇게 하면 잡균과 야생 효모는 살아남기 어렵고, 목표로 한 효모만 안전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유산은 말하자면 효모를 지키는 울타리인 셈입니다.

이 유산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주모 방식의 가장 큰 갈림길입니다.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양조용으로 만들어진 유산을 처음부터 직접 넣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에 있는 유산균이 스스로 유산을 만들어내도록 기다리는 것입니다. 앞의 방식이 빠르고 안정적이라면, 뒤의 방식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대신 복합적인 맛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모를 만드는 세 갈래

유산을 확보하는 방식에 따라 주모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각 방식의 성격만 짧게 짚어 두면, 라벨에서 이런 이름을 만났을 때 훨씬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소쿠조(速醸)
유산을 직접 넣어 빠르게 산성을 만드는 현대적 방식. 약 2주면 주모가 완성되며, 안정적이고 효율이 높아 오늘날 사케 대부분이 이 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기모토(生酛)
유산을 넣지 않고, 양조장에 사는 유산균이 스스로 유산을 만들도록 기다리는 전통 방식. 약 한 달이 걸리며 손이 많이 가지만, 깊고 복합적인 맛으로 이어집니다.
야마하이(山廃)
기모토에서 쌀을 으깨는 힘든 작업(야마오로시)을 생략한 방식. 자연 유산균에 기대는 점은 기모토와 같아, 산미가 살아 있는 힘 있는 맛이 특징입니다.

세 방식의 차이와 맛의 세계는 그 자체로 이야깃거리가 많아, 다음 글에서 따로 자세히 다룹니다. 지금은 ‘유산을 넣느냐, 기다리느냐’가 세 방식을 가르는 큰 기준이라는 점만 기억해 두면 충분합니다.

주모에서 모로미로, 발효의 본무대

주모가 완성되면, 이제 큰 통으로 옮겨 본격적인 발효에 들어갑니다. 이때 주모에 찐 쌀과 쌀누룩, 물을 더해 만드는 큰 규모의 발효액을 모로미(醪)라고 합니다. 사케의 향과 맛이 실제로 완성되는 무대가 바로 이 모로미입니다.

큰 통에서 거품을 내며 발효 중인 사케 모로미
주모를 옮겨 담아 본발효에 들어간 모로미. 표면에 거품이 인다

재료를 한 번에 다 넣으면 효모의 밀도가 갑자기 묽어져 잡균이 끼어들 틈이 생깁니다. 그래서 사케는 쌀과 누룩, 물을 보통 사흘에 걸쳐 세 번에 나눠 넣습니다. 이렇게 조금씩 규모를 키우는 방식을 산단지코미(三段仕込み), 곧 삼단 담금이라고 합니다. 효모가 늘 넉넉한 상태를 유지하며 발효를 주도할 수 있게 하는 지혜입니다.

모로미 안에서는 누룩이 쌀을 계속 당으로 바꾸고, 효모가 그 당을 곧바로 알코올로 바꾸는 일이 동시에 진행됩니다. 이렇게 당화와 발효가 한 통에서 나란히 일어나는 구조 덕분에, 사케는 양조주치고 높은 편인 알코올 도수까지 도달할 수 있습니다. 주모에서 시작된 작은 씨앗이, 여기서 비로소 한 통 가득한 사케로 자라나는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사케 효모는 빵이나 맥주 효모와 다른가요?

학명으로는 모두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시아라는 같은 종에 속합니다. 다만 사케용 효모는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일하고, 알코올이 높아진 환경에서도 잘 견디며, 사케 특유의 향을 잘 만들도록 오랜 세월 골라낸 균주입니다. 같은 종이라도 성격이 다른 여러 균주가 있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주모(슈보)와 모로미는 어떻게 다른가요?

주모는 본격적인 발효에 앞서 건강한 효모를 아주 많이 길러 두는 작은 규모의 준비 단계입니다. 모로미는 그 주모를 큰 통으로 옮긴 뒤 쌀과 누룩, 물을 더해 실제로 술을 만들어내는 본발효액입니다. 주모가 씨앗이라면 모로미는 그 씨앗이 자라 열매를 맺는 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케를 만들 때 유산(젖산)은 왜 넣나요?

주모 안을 산성으로 만들어, 사케를 망치는 잡균과 야생 효모가 자라지 못하게 막기 위해서입니다. 목표로 한 효모는 산성에서도 잘 견디므로, 이 환경에서 안전하게 수를 늘릴 수 있습니다. 소쿠조 방식은 유산을 직접 넣고, 기모토·야마하이 방식은 자연 유산균이 유산을 만들도록 기다립니다.

협회효모가 무엇인가요?

일본양조협회가 우수한 효모를 골라 전국 양조장에 나눠 주는 균주로, 6호·7호·9호처럼 번호로 구분합니다. 6호는 차분하고 발효력이 강하며, 7호는 화사하고 만능형, 9호는 향이 화려해 긴죠 양조의 기준으로 쓰입니다. 어느 효모를 쓰느냐에 따라 술의 향과 맛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긴죠향은 효모가 만드는 향인가요?

네. 사과나 바나나를 떠올리게 하는 긴죠향은 쌀이 아니라 효모가 발효 중에 만들어내는 에스터라는 향 성분입니다. 사과 계열은 카프론산에틸, 바나나 계열은 아세트산이소아밀이 대표적입니다. 이 향은 낮은 온도에서 잘 살아남기 때문에, 긴죠·다이긴죠는 저온에서 오래 발효시켜 향을 지켜냅니다.

정리

효모와 주모는 사케 발효의 진짜 출발점입니다. 큰 그림을 다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효모
당을 알코올로 바꾸고, 사과·바나나 같은 향까지 만들어내는 발효의 주인공
협회효모
번호로 구분되는 개성 있는 균주들. 어떤 효모를 쓰느냐가 술의 향과 맛을 좌우
주모(슈보)
유산으로 잡균을 막으며 효모를 잔뜩 길러 두는, 사케를 낳는 어머니

다음에 사케 한 잔을 마실 때, 잔에서 피어오르는 향과 부드럽게 번지는 감칠맛이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효모들의 일이었다는 것을 떠올려 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효모를 안전하게 키워낸 주모의 시간이, 한 병의 사케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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