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착(조소), 술과 지게미를 가르는 마지막 손길

blog-paste-20260806-141733

누룩과 효모가 몇 주에 걸쳐 만들어낸 모로미(醪)는 아직 사케가 아닙니다. 쌀알과 누룩, 효모가 뒤엉킨 걸쭉한 죽 같은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맑은 술만 걸러내는 마지막 공정이 바로 압착, 일본어로 조소(上槽, じょうそう)입니다.

압착은 단순히 짜는 작업이 아닙니다. 언제,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짜느냐에 따라 같은 모로미에서도 향과 맛이 전혀 다른 술이 나옵니다. 라벨에서 종종 보는 아라바시리, 나카도리, 시즈쿠 같은 말도 모두 이 압착 과정에서 생겨납니다. 이번 글에서는 조소가 무엇이고, 짜는 순서와 방식이 맛을 어떻게 가르는지, 그리고 짜고 남은 주박(사케카스)까지 차분히 정리하겠습니다.

압착(조소)이란 무엇인가

조소(上槽)는 발효를 마친 모로미를 압착해 맑은 술주박(酒粕)으로 갈라내는 공정입니다. 우리말로는 ‘짜기’ 또는 ‘압착’, 일본 양조 현장에서는 ‘시보리(搾り)’라고도 부릅니다. 쌀 씻기부터 누룩 만들기, 주모, 본발효까지 이어진 긴 양조 여정에서 술이 처음으로 액체 형태를 갖추는 순간이 바로 이 단계입니다.

본발효를 끝낸 모로미는 알코올과 쌀의 감칠맛을 품고 있지만, 아직 다 녹지 않은 쌀알과 누룩, 효모 같은 고형분이 잔뜩 섞여 있습니다. 이 걸쭉한 덩어리에서 액체만 걸러내야 우리가 아는 투명한 사케가 됩니다. 그래서 조소는 양조장 입장에서 몇 주간의 발효를 마무리 짓고 술의 성격을 확정하는, 긴장감 있는 마지막 큰 공정입니다.

전통 설비가 놓인 사케 양조장 내부
발효를 마친 모로미가 압착을 기다리는 양조장

왜 짜야 할까, 청주가 되는 갈림길

압착은 맛을 다듬는 공정인 동시에, 사케를 ‘청주’로 만들어 주는 법적 갈림길이기도 합니다. 일본 주세법은 청주(清酒)를 쌀·쌀누룩·물을 발효시켜 거른(짜낸) 술로 정의합니다. 즉 발효한 모로미를 짜서 고형분과 액체를 갈라야 비로소 청주로 인정됩니다.

만약 짜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모로미를 그대로 두면, 그것은 청주가 아니라 도부로쿠(濁酒)로 분류됩니다. 니고리자케가 뿌옇게 흐리면서도 청주로 인정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니고리도 성긴 망으로 ‘짜는’ 공정을 한 번 거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전혀 짜지 않은 술은 아무리 맑게 가라앉혀도 법적으로는 청주가 아닙니다.

발효가 진행 중인 사케 모로미
쌀·누룩·효모가 뒤섞인 모로미, 압착의 대상이 되는 상태

압착 시점도 중요합니다. 발효를 조금 이르게 끊으면 당분이 남아 부드럽고 달큼하며, 끝까지 발효시킨 뒤 짜면 드라이하고 알코올감이 또렷해집니다. 그래서 양조가는 매일 모로미의 온도와 성분을 확인하며, 그 술이 목표한 맛에 도달하는 순간을 골라 압착에 들어갑니다.

짜는 순서, 아라바시리·나카도리·세메

하나의 모로미를 짜는 동안에도 처음 나오는 술과 마지막에 나오는 술의 성격은 크게 다릅니다. 짜는 순서에 따라 술을 세 부분으로 나누는데, 각각을 아라바시리·나카도리·세메라고 부릅니다.

구분나오는 순서맛과 향의 인상
아라바시리
荒走り
압력 없이 자중으로 처음 흘러나오는 부분미세한 탄산과 침전이 남아 살짝 흐릿하고, 가장 신선하며 향이 화려하지만 자극이 강함
나카도리
中取り·中汲み
약한 압력이 걸리는 중간 부분향·맛·투명도의 균형이 가장 좋아 감평회 출품주나 최고급 다이긴죠에 자주 쓰임
세메
責め
마지막에 강한 압력을 더해 짜내는 부분잡미가 있고 알코올 도수가 높으며, 진하고 묵직한 인상

세메 구간에서 도수가 높아지는 이유는, 압착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모로미 속 효모가 발효를 이어가며 알코올을 더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케는 이 세 부분을 한데 섞어 하나의 균형 잡힌 술로 완성합니다. 하지만 나카도리처럼 특정 구간만 따로 병입하면, 그 구간의 개성을 살린 프리미엄 라인이 됩니다. 라벨에 ‘나카도리’ ‘나카구미’라고 적혀 있다면, 가장 좋은 중간 부분만 골라 담았다는 뜻입니다.

유리잔에 따른 맑은 사케
압착을 거쳐 비로소 맑아진 사케

짜는 방식 세 가지, 야부타·후네·후쿠로즈리

압착에는 크게 세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짜느냐에 따라 술에 걸리는 압력과 산소 접촉, 걸리는 시간이 달라지고, 그 차이가 신선함과 섬세함으로 이어집니다.

야부타식 (ヤブタ式, 자동 압착기)
아코디언처럼 늘어선 판 사이에 모로미를 넣고 공기압으로 양쪽에서 눌러 짜는 현대식 기계입니다. 상표명 ‘야부타식 자동 모로미 압착기’에서 이름이 왔습니다. 짧은 시간에 안정적으로 대량을 짤 수 있고, 밀폐·저온 상태로 짜면 발효로 생긴 탄산과 프레시한 향을 잘 보존할 수 있어 오늘날 가장 널리 쓰입니다.
후네시보리 (槽搾り, ふねしぼり)
‘후네(槽)’라 불리는 길쭉한 배 모양 통에 모로미를 담은 술자루를 차곡차곡 쌓고, 위에서 뚜껑으로 천천히 눌러 짜는 전통 방식입니다. 무리한 압력을 주지 않아 부드럽고 섬세한 술이 나오고, 양조가의 의도를 세심하게 반영할 수 있습니다. 대신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후쿠로즈리 (袋吊り, 시즈쿠)
모로미를 담은 술자루를 매달아, 아무 압력도 주지 않고 자중으로 한 방울씩 떨어지는 술만 받는 방식입니다. 시즈쿠(雫), 시즈쿠도리라고도 부릅니다. 잡미가 거의 없고 가장 맑고 화려한 술이 나오지만, 양이 적고 손이 많이 가서 감평회 출품주나 최고급 술에만 씁니다.

세 방식 모두 좋고 나쁨을 가리기보다, 만들려는 술의 성격에 맞춰 선택합니다. 매일 마시는 편안한 사케에는 안정적인 야부타식이, 개성과 섬세함을 살리려는 술에는 후네나 후쿠로즈리가 어울립니다.

시보리타테·무로카·나마, 라벨에서 만나는 압착

압착은 라벨 위 여러 표현과 이어져 있습니다. 조소가 어떤 상태의 술인지 알면, 병에 적힌 말들이 훨씬 또렷하게 읽힙니다.

시보리타테 (搾りたて)
‘갓 짜냈다’는 뜻으로, 압착 직후의 신선한 상태를 그대로 즐기는 술을 가리킵니다. 프레시하고 발랄한 향과 맛이 특징입니다.
아라바시리·나카도리·시즈쿠
앞서 살펴본 짜는 순서와 방식이 그대로 라벨에 표기된 경우입니다. 그 술이 압착의 어느 부분을 담았는지, 어떻게 짰는지를 알려 주는 단서입니다.
무로카·나마와의 관계
압착 다음에는 보통 여과와 가열살균(히이레)이 이어집니다. 여과를 생략하면 무로카(無濾過), 가열살균을 생략하면 나마(生)입니다. ‘무로카 나마겐슈’는 짠 뒤 여과도 가열도 가수도 하지 않은, 압착 직후의 모습에 가장 가까운 술이라는 뜻입니다.

부산물 주박(사케카스), 그냥 버리지 않는다

압착을 하면 맑은 술과 함께 하얀 고형 덩어리가 남습니다. 이것이 주박(酒粕), 일본어로 사케카스이며 우리말로는 술지게미입니다. 짜고 남은 찌꺼기라고는 해도, 다 짜내지 못한 알코올이 보통 8% 안팎 남아 있고 쌀·누룩·효모에서 온 단백질과 식이섬유, 아미노산, 비타민이 풍부한 알짜 재료입니다.

판 모양으로 떼어낸 하얀 주박
압착기에서 판 형태로 떼어낸 주박(이타카스)

그래서 주박은 버려지지 않고 다양하게 쓰입니다. 물과 설탕을 더해 데우면 겨울철 음료 아마자케가 되고, 국에 풀면 몸을 데우는 카스지루가 됩니다. 채소를 절이면 나라즈케 같은 절임이 되고, 다시 증류하면 카스토리 쇼추의 원료가 됩니다. 최근에는 발효 성분 덕분에 화장품과 팩 재료로도 주목받습니다.

그릇에 담긴 사케 주박
요리와 발효 식품에 두루 쓰이는 주박

특히 쌀을 많이 깎은 긴죠나 다이긴죠의 주박은 향이 화사하고 맛이 고급스러워, 요리용으로 따로 팔릴 만큼 인기가 높습니다. 좋은 사케 한 병 뒤에는 이렇게 알뜰하게 쓰이는 주박이 함께 있는 셈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사케 압착(조소)은 정확히 어떤 과정인가요?

발효를 마친 모로미를 짜서 맑은 술과 주박으로 갈라내는 공정입니다. 쌀알과 누룩, 효모 같은 고형분이 섞인 걸쭉한 상태에서 액체만 걸러내는 단계로, 사케 양조의 마지막 큰 공정에 해당합니다. 이 과정을 거쳐야 우리가 아는 투명한 사케가 됩니다.

아라바시리, 나카도리, 세메는 뭐가 다른가요?

모로미를 짜는 순서에 따른 세 부분입니다. 처음 자중으로 흘러나오는 아라바시리는 신선하고 향이 화려하지만 자극이 강하고, 약한 압력 구간의 나카도리는 향과 맛의 균형이 가장 좋아 최고급 술에 쓰입니다. 마지막에 강한 압력으로 짜는 세메는 잡미가 있고 도수가 높으며 묵직합니다. 보통은 셋을 섞어 균형을 맞춥니다.

주박(사케카스)은 어디에 쓰나요? 그냥 버리나요?

버리지 않고 널리 쓰입니다. 알코올이 8% 안팎 남아 있고 단백질·식이섬유·아미노산이 풍부해서, 아마자케나 카스지루 같은 음료와 국, 나라즈케 같은 절임, 카스토리 쇼추의 원료로 활용됩니다. 발효 성분 덕에 화장품 재료로도 쓰이며, 긴죠·다이긴죠의 주박은 향이 좋아 요리용으로 따로 판매되기도 합니다.

라벨의 ‘시즈쿠’나 ‘후쿠로즈리’는 왜 더 비싼가요?

모로미 자루를 매달아 압력 없이 자중으로 떨어지는 방울만 받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잡미가 거의 없고 향이 가장 맑고 화려하게 나오지만, 나오는 양이 적고 손과 시간이 많이 들어 감평회 출품주나 최고급 술에만 쓰입니다. 그만큼 생산 효율이 낮아 가격이 높게 매겨집니다.

압착을 하지 않으면 사케가 아닌가요?

일본 주세법상 청주는 발효한 모로미를 ‘거른(짜낸)’ 술로 정의되므로, 짜는 공정을 전혀 거치지 않으면 청주가 아니라 도부로쿠로 분류됩니다. 뿌연 니고리자케가 청주로 인정받는 것도 성긴 망으로 한 번 짜는 공정을 거치기 때문입니다. 즉 압착 여부가 사케를 청주로 만드는 법적 조건입니다.

정리

압착(조소)은 사케 양조의 마지막 큰 공정이자, 술의 성격을 확정하는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짧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무엇인가
발효를 마친 모로미를 짜서 맑은 술과 주박으로 가르는 공정. 짜야 비로소 청주가 된다.
짜는 순서
아라바시리(신선·화려), 나카도리(균형·최고급), 세메(진하고 도수 높음).
짜는 방식
야부타식(효율·프레시), 후네시보리(부드럽고 섬세), 후쿠로즈리·시즈쿠(가장 맑고 고급).
부산물
주박(사케카스). 아마자케·카스지루·절임·쇼추·화장품으로 알뜰하게 쓰인다.

다음에 사케 라벨에서 아라바시리나 나카도리, 시즈쿠 같은 말을 만나면, 그것이 압착의 어느 부분을 어떻게 담은 술인지 떠올려 보세요. 같은 모로미에서 갈라진 술이라도 짜는 순간의 선택에 따라 전혀 다른 표정을 갖는다는 것, 그 섬세함이 사케를 오래 들여다볼수록 재미있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압착 #조소 #아라바시리 #나카도리 #주박 #사케양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