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을 깎는 시간, 정미가 사케의 맛을 만든다

사케 라벨에서 가장 자주 보이는 숫자는 정미율입니다. 50%, 40%, 어떤 병에는 23%까지 적혀 있습니다. 이 숫자는 쌀을 얼마나 깎아냈는지를 알려주는 값인데, 40%라면 쌀 무게의 60%를 갈아 없앴다는 뜻입니다. 먹을 수 있는 쌀을 절반 이상 버리는 셈입니다.
왜 그렇게까지 깎을까요. 그리고 그 깎는 일은 실제로 어떻게 진행될까요. 이번 글에서는 사케 만들기의 첫 공정인 정미(精米)를 들여다봅니다. 깎는 이유, 정미기 안에서 벌어지는 일, 걸리는 시간, 깎여 나온 쌀겨의 행방, 그리고 깎기가 끝난 뒤에도 며칠을 기다리는 이유까지 순서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정미는 어디에서 시작하는가
논에서 갓 수확한 쌀은 겉껍질에 싸여 있습니다. 이 껍질을 벗겨낸 것이 현미(玄米)이고, 사케 양조장에 들어오는 원료미는 이 현미 상태입니다. 정미는 여기서부터 시작합니다. 현미의 겉층을 조금씩 갈아내 안쪽의 흰 전분질만 남기는 작업입니다.

라벨의 정미율은 그 결과를 무게로 나타낸 값입니다. 계산은 단순합니다. 정미율(%) = 백미 무게 ÷ 현미 무게 × 100. 현미 100kg을 깎아 60kg이 남았다면 정미율 60%이고, 40kg이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숫자가 작을수록 더 많이 깎았다는 의미라, 처음 보면 방향이 헷갈리기 쉽습니다.
일본어 라벨에는 정미보합(精米歩合)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보통 정미율이라 부르는데, 가리키는 값은 같습니다. 숫자가 낮을수록 많이 깎은 쌀이라는 점만 기억하면 됩니다.
비교 기준으로 우리가 밥으로 먹는 쌀을 떠올려 보면 이해가 빠릅니다. 밥쌀은 겉의 10% 정도만 벗겨낸 상태, 즉 정미율 90% 안팎입니다. 사케용 쌀은 일반적으로 70% 전후까지 깎고, 다이긴죠급은 50% 이하까지 갑니다. 밥쌀과는 아예 차원이 다른 깎기입니다.
쌀의 겉을 깎아내는 이유
쌀알은 균일한 덩어리가 아닙니다. 겉층에는 단백질과 지질, 비타민, 무기질이 몰려 있고, 중심으로 갈수록 전분이 많아집니다. 밥으로 먹을 때는 이 영양분이 장점이지만, 사케를 빚을 때는 사정이 다릅니다.
단백질은 발효 과정에서 아미노산으로 바뀝니다. 아미노산은 감칠맛의 원천이지만 지나치면 무겁고 잡스러운 맛이 됩니다. 지질은 사케의 화려한 향, 이른바 긴죠향이 피어오르는 것을 방해하는 쪽으로 작용합니다. 그래서 깨끗하고 향이 도드라지는 술을 목표로 할수록 겉층을 더 많이 걷어냅니다.
또 하나의 목적은 심백(心白)에 다가가는 것입니다. 사케 전용 쌀 중심부에는 성기고 하얀 전분 덩어리가 있는데, 이 부분은 코지균이 파고들기 쉬워 전분을 당으로 바꾸는 과정이 잘 진행됩니다. 겉을 깎아내면 코지가 붙잡을 면적이 심백 쪽으로 열립니다. 정미는 잡맛을 덜어내는 일이면서, 동시에 발효가 잘 되도록 쌀을 준비하는 일입니다.
정미기 안에서 벌어지는 일
오늘날 사케 양조장에서 쓰는 기계는 대부분 세로형 정미기(竪型精米機)입니다. 이름 그대로 쌀알이 세로로 선 상태에서 회전하는 금강사 숫돌에 스치며 깎입니다. 쌀이 눕지 않고 서서 돌기 때문에 알이 고르게 갈리고, 특정 면만 파이는 일이 줄어듭니다.
정미는 한 번에 끝나지 않습니다. 쌀은 기계 안을 여러 번 순환하면서 조금씩 얇아집니다. 여기서 양조장이 신경 쓰는 것이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깨짐입니다. 알이 얇아질수록 쉽게 갈라지고 부서지는데, 부서진 쌀은 물을 불규칙하게 먹어 발효를 흐트러뜨립니다. 그래서 깎을수록 회전을 낮추고 속도를 늦춥니다. 정미가 길어지는 가장 큰 이유가 이것입니다.
둘째는 마찰열입니다. 숫돌에 스치는 동안 쌀 온도가 올라가고 수분이 빠져나갑니다. 너무 뜨거워지면 쌀이 상하거나 갈라지므로 열을 살피며 속도를 조절합니다. 그래서 좋은 정미란 ‘빨리 많이 깎는 것’이 아니라, 깨지지 않게 원하는 두께까지 데려가는 것에 가깝습니다.

쌀 품종에 따라 난이도도 다릅니다. 심백이 큰 쌀은 코지가 잘 들어가는 대신 속이 성겨서 잘 깨집니다. 그래서 아주 높은 수준까지 깎는 다이긴죠에는 알이 크고 단단해 잘 버티는 야마다니시키 같은 품종이 자주 선택됩니다. 정미기의 성능과 쌀의 성질, 그리고 조작하는 사람의 판단이 함께 결과를 만듭니다.
쌀 한 자루를 깎는 데 걸리는 시간
정미 시간은 목표 정미율에 비례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깎을수록 급격히 길어집니다. 깨짐을 막기 위해 속도를 계속 늦추기 때문입니다. 아래는 널리 인용되는 대략적인 기준으로, 정미기 성능과 품종에 따라 달라집니다.
| 정미율 | 깎아낸 비율 | 대략적인 정미 시간 | 주로 해당하는 술 |
|---|---|---|---|
| 90% 전후 | 10% 전후 | 수십 분 | 우리가 먹는 밥쌀 |
| 70% | 30% | 약 12시간 | 후츠슈, 혼죠조, 준마이 |
| 60% | 40% | 약 24시간 | 긴죠, 준마이긴죠 |
| 50% | 50% | 약 48시간 | 다이긴죠, 준마이다이긴죠 |
| 40% | 60% | 약 72시간 | 고급 다이긴죠 |
| 35% | 65% | 약 100시간 | 최상급 다이긴죠 |
정미율 35%라면 나흘 넘게 기계를 돌린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남는 쌀은 처음 무게의 3분의 1 정도입니다. 현미 1톤을 넣어 350kg만 건지는 셈이니, 같은 양의 술을 만들려면 원료가 세 배 가까이 필요합니다. 고정미 사케의 가격이 높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계산입니다.
극단적인 예도 있습니다. 야마가타의 다테노카와 양조장은 2014년에 정미율 8% 사케를 낸 뒤 7%로 내려갔고, 이후 정미율 1%의 「고묘(光明)」를 내놓았습니다. 쌀알을 지름 1mm 크기까지 깎는 데 약 1,800시간, 날수로 75일가량이 걸렸습니다. 널리 알려진 닷사이의 「니와리산분」은 정미율 23%입니다.
깎여 나온 쌀겨는 어디로 가는가
정미율 40% 사케라면 쌀의 60%가 가루가 되어 나옵니다. 이 가루를 쌀겨(누카)라고 부르는데, 통째로 버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깎이는 순서에 따라 성질이 달라져 용도가 나뉩니다.

가장 먼저 나오는 겉층 쌀겨는 색이 진하고 지질이 많아 예전부터 절임이나 비료, 사료로 쓰였습니다. 정미가 진행되면서 나오는 안쪽 쌀겨는 점점 하얗고 곱게 변합니다. 이 흰 쌀가루는 사실상 쌀 전분에 가까워, 쌀과자나 떡, 된장, 화장품 소재 등 식품과 생활용품 쪽으로 넘어갑니다.
즉 다이긴죠를 위해 깎아낸 절반 이상의 쌀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산업으로 흘러갑니다. 사케 한 병 뒤에 쌀 몇 배의 무게가 있다는 사실은 그대로지만, 그 무게가 낭비만은 아닌 셈입니다.
깎은 쌀을 바로 쓰지 않는 이유
정미가 끝난 쌀은 곧바로 씻어 담그지 않습니다. 마찰열 때문에 쌀이 뜨겁고 건조해져 있어서, 이 상태로 물에 넣으면 표면만 급하게 물을 먹고 알이 갈라집니다. 그래서 서늘하고 어두운 곳에 쌓아두고 기다립니다. 이 휴식 기간을 카라시(枯らし)라고 부릅니다.
기간은 보통 2주에서 3주 정도입니다. 이 사이에 쌀 온도가 내려가고, 알 안쪽과 표면의 수분 차이가 고르게 평형을 찾습니다. 겉만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기간이지만, 다음 공정인 씻기와 담그기가 예상대로 진행되도록 만드는 준비입니다.
정미의 순서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현미 반입, 깎기, 카라시로 안정, 그다음이 씻기(洗米)와 담그기(浸漬)입니다. 사케 만들기에서 첫 며칠은 발효가 아니라 쌀을 다듬고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정미기가 바꿔 놓은 사케의 역사
지금은 정미율 40%가 흔하지만, 기계가 없던 시절에는 불가능한 숫자였습니다. 발로 밟거나 물레방아 힘으로 찧던 시대에는 70% 정도가 한계였고, 돌로 찧는 과정에서 석분이 섞여 들어가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깎고 싶어도 깎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전환점은 1930년입니다. 히로시마의 정미기 제조사 사타케가 세로형 연삭식 정미기를 완성하면서, 물레방아로는 닿을 수 없던 정미율 40%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잡맛의 원인이 되는 겉층을 대량으로 걷어낼 수 있게 되자, 맑고 향이 화려한 술을 설계할 여지가 생겼습니다.
이 기술이 실제 시장을 바꾼 것은 조금 뒤입니다. 1980년대에 이르러 긴죠와 다이긴죠가 널리 만들어지고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케의 대표 이미지로 떠올리는 화려한 향의 다이긴죠는, 반세기 전 정미기의 발전 없이는 성립하지 않았던 스타일입니다.
모양까지 계산하는 정미, 편평정미와 원형정미
쌀알은 원래 길쭉한 타원 모양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정미 방식으로 깎으면 길이 방향이 더 많이 갈려서, 결과물이 점점 동그란 공 모양이 됩니다. 이것을 구형정미라고 부릅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아직 남겨두어도 될 안쪽 전분까지 함께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나온 접근이 쌀알의 원래 형태를 유지하며 깎는 방식입니다. 길이와 폭, 두께를 같은 비율로 줄여 현미와 닮은 모양으로 남기는 것이 원형정미이고, 두께 쪽을 더 집중적으로 깎아 납작하게 만드는 것이 편평정미입니다.
| 방식 | 깎는 방향 | 특징 |
|---|---|---|
| 구형정미 | 길이 방향이 많이 깎임 | 가장 일반적, 남겨도 될 전분까지 사라짐 |
| 원형정미 | 길이·폭·두께를 같은 비율로 | 현미와 닮은 모양, 같은 정미율에서 단백질 제거에 유리 |
| 편평정미 | 두께를 집중적으로 | 납작한 모양, 쌀 낭비가 적음. 쌀이 깨지기 쉬움 |
잡맛의 원인이 되는 단백질은 쌀알의 길이 방향뿐 아니라 두께와 폭 방향에서도 표면 가까이에 많이 분포합니다. 그래서 두께를 집중적으로 깎으면 적은 정미로도 같은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정미율 60%의 편평정미가 40%의 구형정미와 비슷한 수준으로 단백질을 걷어낸다고 이야기됩니다.
숫자로만 보면 60%인 술이 40%인 술과 비슷한 조건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는 뜻이니, 라벨의 정미율만으로 품질을 재는 습관이 흔들리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편평정미는 쌀이 깨지기 쉽고 낮은 정미율에서는 배아가 남기 쉬워 다루기가 까다롭습니다. 최근에는 기계 성능이 개선되면서 소요 시간이 줄고, 쌀을 낭비하지 않는 방식으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많이 깎을수록 좋은 사케일까
많이 깎으면 확실히 얻는 것이 있습니다. 잡맛이 줄고, 향이 또렷하게 서고, 질감이 매끄러워집니다. 시간과 원료가 훨씬 많이 드니 가격도 올라갑니다. 여기까지는 사실입니다.
다만 ‘깎을수록 맛있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겉층을 걷어내는 일은 잡맛을 덜어내는 동시에 쌀 본래의 감칠맛과 두께도 덜어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쌀의 존재감이 살아 있는 술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정미율 70%의 준마이가 35%의 다이긴죠보다 더 맞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에는 일부러 덜 깎아 쌀맛을 살린 사케를 내는 양조장도 늘고 있습니다.
게다가 사케의 맛은 정미만으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쌀 품종, 물, 효모, 코지, 발효 온도, 그리고 저장 방식이 모두 함께 작용합니다. 정미율은 그 술이 어느 방향을 지향하는지 알려주는 하나의 신호일 뿐입니다. 라벨의 숫자를 보고 ‘얼마나 고급인가’를 재기보다, ‘어느 쪽 맛을 노렸는가’를 읽는 편이 사케를 고르는 데 훨씬 도움이 됩니다.
다음에 사케를 마실 때 라벨의 정미율을 한 번 확인해 보세요. 그 숫자 뒤에는 며칠 동안 조심스럽게 돌아간 정미기와, 깎인 뒤 조용히 열을 식힌 몇 주의 시간이 들어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사케 정미율은 낮은 게 좋은 건가요?
낮을수록 많이 깎았다는 뜻이고, 잡맛이 줄어 향이 또렷하고 매끄러운 술이 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좋다’와는 다른 문제입니다. 겉층을 덜어내면 쌀 특유의 감칠맛도 함께 줄어들기 때문에, 쌀맛이 살아 있는 술을 원한다면 정미율 70% 전후의 준마이가 더 잘 맞을 수 있습니다. 취향의 방향을 알려주는 숫자로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쌀을 깎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요?
정미율 70%까지는 약 12시간, 60%는 약 24시간, 50%는 약 48시간, 40%는 약 72시간, 35%는 약 100시간이 기준으로 이야기됩니다. 깎을수록 쌀이 깨지기 쉬워 속도를 계속 낮춰야 하므로 시간이 급격히 늘어납니다. 정미기 성능과 쌀 품종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정미율과 정미보합은 다른 말인가요?
같은 값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일본어 라벨에는 정미보합(精米歩合)이라 적혀 있고, 한국에서는 보통 정미율이라 부릅니다. 계산식은 백미 무게를 현미 무게로 나눈 백분율이며, 60%라면 겉의 40%를 깎아냈다는 뜻입니다.
깎아낸 쌀은 그냥 버리나요?
버리지 않습니다. 깎여 나온 쌀겨는 나오는 순서에 따라 성질이 달라져, 겉층은 절임이나 비료, 사료로 쓰이고 안쪽의 흰 쌀가루는 쌀과자, 떡, 된장, 화장품 소재 등으로 활용됩니다. 정미율 40% 사케라면 쌀의 60%가 이렇게 다른 용도로 흘러갑니다.
정미가 끝나면 바로 술을 담그나요?
아닙니다. 마찰열로 뜨겁고 건조해진 쌀을 바로 물에 담그면 알이 갈라지기 때문에, 서늘한 곳에서 보통 2주에서 3주 정도 재워 둡니다. 이 과정을 카라시라고 부르며, 쌀의 온도와 수분이 고르게 안정된 다음에 씻기와 담그기로 넘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