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의 숫자를 읽는 법, 등급·정미율·일본주도까지

사케 병을 처음 뒤집어 보면, 앞면의 멋진 붓글씨와 달리 뒷면에는 낯선 숫자와 용어가 빼곡합니다. 준마이·긴죠 같은 이름, 60%·50% 같은 백분율, +3·-2 같은 부호 붙은 숫자들. 처음엔 암호처럼 보이지만, 이 숫자들이야말로 병을 열기 전에 맛의 방향을 알려 주는 가장 정직한 힌트입니다.
앞선 「사케 라벨 읽는 법」이 앞면의 브랜드·용량·알코올 같은 기본 정보를 다뤘다면, 이번 글은 한 걸음 더 들어가 등급(특정명칭)·정미율·일본주도·산도·아미노산도를 읽는 법을 정리합니다. 이 다섯 가지만 이해하면, 낯선 양조장의 사케라도 라벨만 보고 대략의 맛을 그려 볼 수 있습니다.

답은 뒷면 라벨에 있다
사케의 앞면 라벨(오모테 라벨)은 대개 브랜드명과 양조장 이름을 붓글씨로 크게 담습니다. 맛을 가늠하게 해 주는 정보는 오히려 뒷면 라벨(우라 라벨)에 몰려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청주의 용기에 품목·원재료명·알코올분·내용량·제조년월 등을 표시하도록 법으로 정해 두었고, 특정명칭주라면 특정명칭과 정미보합도 함께 적게 되어 있습니다.
반면 일본주도·산도·아미노산도 같은 성분 수치는 표시 의무가 아닙니다. 그래서 병에 따라 적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다. 적혀 있다면 맛의 방향을 읽는 좋은 단서가 되고, 없더라도 특정명칭과 정미율만으로 충분히 큰 그림을 잡을 수 있습니다. 아래에서 하나씩 뜯어보겠습니다.
특정명칭, 라벨이 알려 주는 등급
가장 먼저 눈에 담아야 할 것은 특정명칭(特定名称)입니다. 준마이·긴죠·다이긴죠·혼죠조 같은 이름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는 마케팅용 애칭이 아니라, 두 가지 기준으로 정해지는 일종의 공식 분류입니다. 첫째는 쌀을 얼마나 깎았는가(정미보합), 둘째는 양조 알코올을 넣었는가입니다.
쌀·물·쌀누룩만으로 빚어 양조 알코올을 넣지 않으면 이름에 준마이(純米)가 붙습니다. 소량의 양조 알코올을 더해 향을 끌어올리거나 맛을 다듬으면 준마이가 빠지고 긴죠·다이긴죠·혼죠조가 됩니다. 여기에 저온에서 천천히 발효시키는 긴죠즈쿠리(吟醸造り)를 거치면 긴죠·다이긴죠가 됩니다.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특정명칭 | 정미보합 | 양조 알코올 | 긴죠즈쿠리 |
|---|---|---|---|
| 준마이슈 | 규정 없음(표시 의무) | 없음 | — |
| 특별준마이슈 | 60% 이하 또는 특별한 제조법 | 없음 | — |
| 준마이긴죠슈 | 60% 이하 | 없음 | ○ |
| 준마이다이긴죠슈 | 50% 이하 | 없음 | ○ |
| 혼죠조슈 | 70% 이하 | 있음(백미 중량 10% 이하) | — |
| 특별혼죠조슈 | 60% 이하 또는 특별한 제조법 | 있음 | — |
| 긴죠슈 | 60% 이하 | 있음(백미 중량 10% 이하) | ○ |
| 다이긴죠슈 | 50% 이하 | 있음(백미 중량 10% 이하) | ○ |
* 준마이슈는 예전에 정미보합 70% 이하라는 조건이 있었지만 2004년에 폐지되어, 지금은 상한 규정이 없습니다. 다만 라벨에는 실제 정미보합을 표시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위 조건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으면 특정명칭을 붙일 수 없고, 이를 후츠슈(보통주)라고 부릅니다.

정미율, 쌀을 얼마나 깎았나
정미보합(精米步合), 우리말로 정미율은 현미를 깎고 남은 부분의 비율을 뜻합니다. 예컨대 정미보합 60%란, 바깥쪽 40%를 깎아 내고 안쪽 60%만 남겨 술을 빚었다는 의미입니다. 숫자가 작을수록 더 많이 깎았다는 뜻이라, 방향을 헷갈리기 쉽습니다.
쌀알의 바깥쪽에는 단백질·지방·미네랄이 많은데, 이 성분들은 발효 과정에서 잡미나 거친 향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많이 깎을수록(정미보합이 낮을수록) 잡미가 줄고 깔끔하고 화려한 향이 나기 쉽습니다. 반대로 덜 깎으면 쌀의 감칠맛과 두께가 살아납니다. 단, 많이 깎았다고 무조건 ‘더 좋은 술’인 것은 아닙니다. 깎는 정도는 양조장이 의도한 스타일의 문제일 뿐, 우열의 문제가 아닙니다.

정리하면, 정미보합은 앞의 특정명칭과 짝을 이루어 읽는 숫자입니다. 다이긴죠라면 50% 이하, 긴죠라면 60% 이하라는 조건이 이미 걸려 있으므로, 정미보합 숫자를 보면 그 술이 얼마나 깎은 술인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본주도, 단맛과 드라이함의 지표
일본주도(日本酒度)는 라벨에서 +3, -2처럼 부호가 붙은 숫자로 등장합니다. 물의 비중을 기준(±0)으로 삼아, 술에 당분이 많아 물보다 무거우면 마이너스, 당분이 적어 가벼우면 플러스로 표시합니다. 그래서 대체로 마이너스일수록 단맛, 플러스일수록 드라이(카라쿠치)한 경향을 읽을 수 있습니다.
| 일본주도 | 맛의 경향 |
|---|---|
| -6.0 이하 | 매우 단맛 |
| -3.5 ~ -5.9 | 단맛 |
| -1.5 ~ -3.4 | 약간 단맛 |
| -1.4 ~ +1.4 | 보통 |
| +1.5 ~ +3.4 | 약간 드라이 |
| +3.5 ~ +5.9 | 드라이 |
| +6.0 이상 | 매우 드라이 |
다만 이 숫자는 당분의 양만 본 지표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실제 혀가 느끼는 단맛·드라이함은 당분뿐 아니라 산미·감칠맛·알코올감이 함께 만들어 냅니다. 같은 +3이라도 산도가 높으면 더 날카롭게 드라이하게, 낮으면 부드럽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일본주도는 다음의 산도와 반드시 함께 읽어야 합니다.
산도, 맛의 윤곽과 무게
산도(酸度)는 사케에 들어 있는 유기산(젖산·사과산·호박산 등)의 양을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부호 없는 숫자로 표기되며, 일반적인 사케는 대체로 1.3~1.5 전후에 몰려 있습니다. 산도는 단순한 신맛의 세기라기보다, 맛 전체의 윤곽과 마무리를 결정하는 요소에 가깝습니다.
산도가 높으면 맛이 또렷하고 무게감이 있으며, 마무리가 깔끔하게 끊겨 상대적으로 드라이하게 느껴집니다. 산도가 낮으면 부드럽고 순한 인상이 강해져, 같은 당분이라도 더 달게 느껴집니다. 앞서 본 일본주도가 ‘당분의 양’이라면, 산도는 ‘그 당분이 어떻게 느껴질지’를 좌우하는 셈입니다.
아미노산도, 감칠맛과 바디감
아미노산도(アミノ酸度)는 사케에 담긴 아미노산의 양을 나타내며, 감칠맛(우마미)과 코쿠(깊이·바디감)의 목안이 됩니다. 이 역시 라벨에 늘 적히지는 않지만, 있다면 대개 1.0~1.5 전후의 값을 봅니다.
아미노산도가 높으면 감칠맛이 풍부하고 농후해, 진하고 묵직한 인상을 줍니다. 낮으면 담백하고 깔끔해 물처럼 산뜻하게 넘어갑니다. 다만 아미노산이 지나치게 많으면 잡미로 이어질 수 있어, 화려한 향을 노리는 긴죠 계열은 오히려 아미노산도를 낮게 잡는 경우가 많습니다.
네 숫자를 함께 읽으면 맛이 보인다
각 숫자를 따로 보면 조각에 불과하지만, 함께 읽으면 그림이 완성됩니다. 특히 일본주도(단맛↔드라이)와 산도(담백↔농후)를 두 축으로 놓으면, 사케의 맛을 네 가지 방향으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 유형 | 숫자 조합 | 인상 |
|---|---|---|
| 담려·단맛 | 일본주도 낮음 · 산도 낮음 | 가볍고 부드럽게 달다 |
| 담려·드라이 | 일본주도 높음 · 산도 낮음 | 깔끔하고 산뜻한 드라이(니가타풍) |
| 농순·단맛 | 일본주도 낮음 · 산도 높음 | 진하고 달며 여운이 길다 |
| 농순·드라이 | 일본주도 높음 · 산도 높음 | 묵직하고 힘 있는 드라이 |
여기에 특정명칭·정미율로 향의 방향(화려함↔담백함)을, 아미노산도로 바디의 두께를 더하면 그림이 한층 선명해집니다. 예를 들어 ‘준마이다이긴죠 · 정미보합 45% · 일본주도 +3 · 산도 1.3’이라면, 많이 깎아 향이 맑고 살짝 드라이하며 가벼운 술이라고 그려 볼 수 있습니다.

알코올분과 그 밖의 표기
성분 수치 외에도 뒷면 라벨에는 맛을 짐작하게 하는 표기가 더 있습니다. 알코올분은 대부분의 사케가 15~16도에 몰려 있지만, 물을 타지 않은 겐슈(原酒)는 17~20도로 높고, 저알코올·스파클링 타입은 그보다 낮습니다.
원재료명도 중요한 단서입니다. ‘쌀·쌀누룩’만 적혀 있으면 준마이 계열, ‘쌀·쌀누룩·양조 알코올’이면 혼죠조·긴죠·다이긴죠 계열입니다. 당류나 산미료가 함께 적혀 있다면 보급형 후츠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밖에 제조년월(병입 시점)과 쌀 품종, 사용 효모, 화입(火入れ) 여부 등이 적혀 있다면 신선도와 스타일을 읽는 데 도움이 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사케 라벨에서 등급은 어떻게 확인하나요?
준마이·긴죠·다이긴죠·혼죠조처럼 이름에 붙은 특정명칭이 곧 공식 분류입니다. 뒷면 라벨의 특정명칭과 그 옆의 정미보합(예: 60%)을 함께 보면, 얼마나 깎았고 양조 알코올을 넣었는지까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런 표기가 없으면 특정명칭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후츠슈(보통주)입니다.
정미율이 낮을수록 더 좋은 사케인가요?
정미보합 숫자가 낮다는 것은 쌀을 더 많이 깎았다는 뜻이라, 잡미가 적고 향이 맑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많이 깎았다고 무조건 좋은 술은 아닙니다. 덜 깎은 술은 쌀의 감칠맛과 두께가 살아나므로, 낮은 정미율은 ‘우열’이 아니라 양조장이 의도한 ‘스타일’로 이해하는 편이 맞습니다.
일본주도가 플러스면 무조건 드라이한가요?
대체로 플러스는 드라이, 마이너스는 단맛 경향을 보이지만 절대적이지는 않습니다. 일본주도는 당분의 양만 재는 지표라, 산도가 높으면 같은 값이라도 더 드라이하게, 아미노산도가 높으면 더 부드럽고 달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일본주도는 산도와 함께 읽어야 정확합니다.
라벨에 일본주도나 산도가 안 적혀 있으면 어떻게 하나요?
일본주도·산도·아미노산도는 표시 의무가 아니라서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땐 특정명칭과 정미율, 그리고 양조장이 적어 둔 맛 설명(카라쿠치·아마쿠치 등)으로 방향을 유추하면 됩니다. 긴죠·다이긴죠라면 향이 화려하고 가벼운 편, 준마이 계열이라면 쌀의 감칠맛이 두드러지는 편이라는 큰 틀은 그대로 유효합니다.
정리
뒷면 라벨의 다섯 숫자는 각각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 특정명칭
- 등급의 큰 틀 — 깎은 정도와 양조 알코올 유무
- 정미율
- 향의 맑기 — 숫자가 낮을수록 많이 깎은 술
- 일본주도
- 단맛↔드라이 — 마이너스는 단맛, 플러스는 드라이
- 산도 · 아미노산도
- 맛의 윤곽과 두께 — 담백함과 농후함을 가른다
처음에는 이 숫자들이 낯설게 느껴지지만, 몇 병만 라벨을 확인하며 마셔 보면 숫자와 실제 맛이 서서히 연결되기 시작합니다. 그때부터는 낯선 양조장의 사케 한 병을 골라도, 병을 열기 전에 대략의 맛을 그려 볼 수 있게 됩니다. 라벨을 읽는 일은 결국, 사케를 더 즐겁게 고르는 나만의 언어를 갖는 과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