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행복발효, 사케만의 독특한 발효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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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케 한 병을 앞에 두고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있으신가요. 와인은 포도로, 맥주는 보리로 만드는데 사케는 쌀로 만든다고 합니다. 그런데 밥은 아무리 오래 두어도 술이 되지 않습니다. 쌀이 어떻게 도수 15도가 넘는 술이 되는 걸까요.

그 답이 병행복발효(並行複発酵)입니다. 쌀의 전분을 당으로 바꾸는 일과, 그 당을 알코올로 바꾸는 일이 하나의 탱크 안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방식입니다. 세계의 술 가운데 이렇게 정교하게 두 가지 일을 겹쳐 놓은 술은 드물고, 사케의 도수와 향, 감칠맛은 대부분 여기서 갈립니다. 이번 글에서는 병행복발효의 원리를 와인, 맥주와 나란히 놓고 처음부터 풀어보겠습니다.

쌀은 왜 그대로 두면 술이 되지 않을까

술을 만드는 주역은 효모입니다. 효모는 당을 먹고 알코올과 탄산가스를 내놓습니다. 그런데 효모가 먹을 수 있는 것은 포도당처럼 아주 작은 단위의 당뿐입니다. 포도에는 이런 당이 처음부터 넉넉히 들어 있어서, 껍질에 붙은 효모만으로도 자연스럽게 술이 되어버립니다.

반면 쌀에 들어 있는 것은 전분입니다. 전분은 포도당 수백에서 수천 개가 사슬처럼 길게 이어진 커다란 분자라서, 효모가 그대로는 손도 대지 못합니다. 밥을 며칠 두면 상하기만 할 뿐 술이 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곡물로 술을 빚으려면 반드시 이 긴 사슬을 잘라 포도당으로 바꾸는 과정이 먼저 필요합니다. 이것을 당화라고 부릅니다.

결국 곡물로 만드는 모든 술은 당화와 발효라는 두 가지 일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합니다. 이 두 일을 언제, 어디서, 어떤 순서로 처리하느냐가 술마다 다르고, 바로 그 차이가 세계의 술을 세 갈래로 나눕니다.

세계의 술이 발효하는 세 가지 방식

효모가 직접 술을 만드는 양조주는 발효 방식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이름이 낯설어 보이지만 구조는 아주 단순합니다. 당화가 필요 없는지, 당화를 먼저 끝내고 발효하는지, 아니면 둘을 동시에 하는지의 차이입니다.

발효 방식대표 술당화와 발효의 관계
단발효와인원료에 당이 이미 있어 당화가 필요 없다. 효모가 곧바로 발효한다
단행복발효맥주당화를 먼저 끝낸 뒤, 만들어진 당액을 옮겨 발효한다. 두 일이 순서대로 진행된다
병행복발효사케한 탱크 안에서 당화와 발효가 동시에 진행된다
포도밭에서 수확을 앞둔 와인용 포도송이
포도에는 당이 이미 들어 있어 당화 과정이 필요 없다

와인은 가장 단순합니다. 포도즙에 효모를 넣으면 당이 곧바로 알코올로 바뀝니다. 맥주는 한 단계가 더 붙습니다. 보리를 싹 틔워 만든 맥아의 효소로 전분을 당으로 바꾸는 당화 공정을 먼저 마치고, 그렇게 만든 달콤한 맥즙을 발효 탱크로 옮겨 효모를 넣습니다. 당화하는 곳과 발효하는 곳이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맥주 양조장의 당화조와 발효 설비가 늘어선 브루하우스
맥주는 당화를 마친 뒤 따로 옮겨 발효한다

사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찐쌀, 쌀누룩, 물, 효모를 한 탱크에 함께 넣고, 당화와 발효를 같은 자리에서 나란히 진행시킵니다. 누룩의 효소가 쌀 전분을 조금씩 당으로 바꾸면 그 자리에 있던 효모가 만들어진 당을 곧바로 먹어 치웁니다. 만들고 먹고, 만들고 먹기를 한 달 가까이 반복하는 셈입니다.

누룩 효소가 당을 조금씩 내어놓는다

병행복발효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쌀누룩입니다. 찐쌀에 누룩곰팡이를 피워 만든 쌀누룩은 전분을 자르는 효소를 대량으로 내놓는 작은 효소 공장입니다. 이 효소는 두 종류가 짝을 이루어 일합니다.

누룩곰팡이가 하얗게 피어난 쌀누룩 알갱이 클로즈업
쌀알 표면에 하얗게 곰팡이가 피어난 쌀누룩
알파 아밀라아제
긴 전분 사슬을 중간중간 잘라 물에 녹는 덱스트린으로 만듭니다. 커다란 덩어리를 다루기 좋은 크기로 토막 내는 역할입니다.
글루코아밀라아제
토막 난 덱스트린의 끝에서 포도당을 하나씩 떼어냅니다. 효모가 바로 먹을 수 있는 형태는 이 단계에서 비로소 만들어집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속도입니다. 효소는 전분을 한꺼번에 몽땅 당으로 바꾸지 않습니다. 하나씩 천천히 떼어내기 때문에 탱크 안의 당 농도는 늘 낮게 유지됩니다. 만들어지는 족족 효모가 먹어 치우니 당이 쌓일 틈도 없습니다. 이 조금씩 내어놓고 곧바로 소비하는 균형이 병행복발효의 본질이고, 다음 장에서 볼 사케의 높은 도수도 여기서 나옵니다.

양조주 가운데 도수가 가장 높은 이유

증류하지 않고 발효만으로 만드는 술을 양조주라고 합니다. 맥주는 보통 5도 안팎, 와인은 12도에서 14도 정도에서 멈춥니다. 그런데 사케의 발효를 마친 원주는 18도에서 20도까지 올라갑니다. 발효만으로 도달할 수 있는 사실상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비결은 당을 한꺼번에 쏟아붓지 않는 데 있습니다. 효모 입장에서 주변에 당이 지나치게 많으면 삼투압이 높아져 세포가 물을 빼앗기고, 발효 효율이 눈에 띄게 떨어집니다. 맥주처럼 당화를 먼저 끝내면 발효를 시작하는 순간 당 농도가 가장 높기 때문에, 처음부터 효모에게 부담을 주게 됩니다.

병행복발효에서는 그런 순간이 오지 않습니다. 효소가 필요한 만큼만 당을 만들고 효모가 그때그때 소비하니, 탱크 안은 발효 내내 효모가 일하기 좋은 상태로 유지됩니다. 덕분에 효모는 지치지 않고 자신의 알코올 내성 한계인 20% 부근까지 발효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마시는 사케가 대개 15도 안팎인 것은, 이렇게 완성된 18도에서 20도의 원주에 물을 더해 마시기 좋은 도수로 맞추기 때문입니다. 물을 타지 않고 그대로 병에 담은 술을 겐슈(原酒)라고 하며, 도수가 높고 맛이 진한 것이 특징입니다.

병행복발효로 빚는 다른 술들

병행복발효가 사케만의 전유물은 아닙니다. 곰팡이가 만든 효소로 곡물을 당화하는 이 방식은 동아시아 술 문화의 공통된 뿌리이고, 한국의 막걸리와 중국의 황주(사오싱주가 대표적입니다)도 같은 원리로 빚습니다. 일본 안에서도 소주와 아와모리는 증류 전 단계에서 병행복발효로 술덧을 만듭니다.

여러 종류의 막걸리 병이 나란히 놓인 모습
막걸리도 누룩으로 당화와 발효를 동시에 진행하는 술이다

다만 쓰는 곰팡이가 다릅니다. 사케는 황국균이라 불리는 아스페르길루스 오리제를 찐쌀에 단독으로 배양한 쌀누룩을 씁니다. 한 종류의 곰팡이를 순수하게 키워 쓰기 때문에 효소의 힘과 맛의 방향을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반면 한국의 전통 누룩이나 중국의 곡은 밀이나 쌀을 반죽해 덩어리로 빚은 뒤 공기 중의 여러 미생물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두는 방식이 오래 이어져 왔습니다. 아스페르길루스뿐 아니라 리조푸스, 무코르 같은 곰팡이와 여러 효모, 젖산균이 함께 들어 있어 술에 복합적인 산미와 개성이 생깁니다. 같은 병행복발효라도 사케가 유난히 깔끔하고 향이 또렷한 이유 하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같은 원리에서 맛이 갈리는 자리

병행복발효는 당화와 발효라는 두 개의 속도를 동시에 다루는 일입니다. 어느 쪽이 조금 더 빠른가에 따라 술의 성격이 달라지기 때문에, 양조 장인이 맛을 설계할 여지도 그만큼 넓어집니다. 손잡이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물의 양
쌀 대비 물을 넉넉히 잡으면 발효가 상대적으로 빨라져 당이 남지 않고, 깔끔하고 산뜻한 방향으로 기웁니다.
누룩의 비율
전체 쌀 가운데 누룩으로 쓰는 비율을 높이면 효소가 늘어 당화가 빨라집니다. 당이 여유롭게 공급되어 진하고 단맛이 도는 술이 됩니다.
발효 온도
마지막 담금 시점의 온도는 긴죠라면 6도에서 7도, 일반적인 술이라면 7도에서 10도가 기준입니다. 낮게 잡을수록 발효가 느려지고 향이 곱게 살아납니다.

긴죠나 다이긴죠가 10도 안팎의 낮은 온도에서 한 달 넘게 천천히 발효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발효를 느리게 붙잡아 두면 효모가 사과나 바나나를 떠올리게 하는 화사한 향을 만들어 내고, 그것이 긴죠향으로 남습니다.

쌀과 물과 곰팡이와 효모라는 단순한 재료가, 두 가지 발효를 겹쳐 놓는다는 아이디어 하나로 이렇게 다양한 표정을 얻습니다. 다음에 사케를 한 잔 따를 때, 그 안에서 한 달 동안 쉬지 않고 이어졌던 작은 주고받음을 떠올려 보시면 맛이 조금 다르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자주 묻는 질문

병행복발효란 무엇인가요?

쌀 전분을 당으로 바꾸는 당화와, 그 당을 알코올로 바꾸는 발효가 하나의 탱크 안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방식입니다. 쌀누룩의 효소가 전분을 조금씩 당으로 분해하면 같은 자리의 효모가 그 당을 바로 알코올로 바꿉니다. 사케를 비롯한 동아시아 곡물 술의 핵심 원리입니다.

사케와 맥주의 발효 방식은 무엇이 다른가요?

맥주는 맥아의 효소로 당화를 먼저 끝낸 뒤 그 맥즙을 옮겨 발효하는 단행복발효입니다. 당화와 발효가 순서대로, 다른 자리에서 진행됩니다. 사케는 당화와 발효가 같은 탱크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병행복발효라는 점이 결정적으로 다릅니다.

사케는 왜 다른 양조주보다 도수가 높나요?

당이 한꺼번에 만들어지지 않고 효소가 조금씩 내어놓는 대로 효모가 소비하기 때문입니다. 당 농도가 높아 효모가 지치는 상황이 오지 않아, 알코올 내성의 한계인 20% 부근까지 발효가 이어집니다. 그 결과 발효를 마친 원주는 18도에서 20도에 이르고, 맥주 5도 안팎이나 와인 12도에서 14도와 크게 차이가 납니다.

막걸리도 병행복발효로 만드나요?

네, 막걸리와 중국의 황주도 누룩으로 당화와 발효를 동시에 진행하는 병행복발효 술입니다. 다만 사케는 아스페르길루스 오리제 한 종류를 찐쌀에 순수 배양한 쌀누룩을 쓰고, 한국과 중국의 전통 누룩은 리조푸스나 무코르 같은 여러 미생물이 함께 들어 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사케 특유의 깔끔한 맛은 이 차이에서 상당 부분 나옵니다.

병행복발효는 사케 맛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당화와 발효의 속도 균형이 맛을 결정합니다. 물을 넉넉히 잡으면 발효가 앞서 깔끔한 술이 되고, 누룩 비율을 높이면 당화가 앞서 진하고 단맛이 도는 술이 됩니다. 마지막 담금 온도도 긴죠는 6도에서 7도, 일반적인 술은 7도에서 10도로 달리 잡아 향의 방향을 조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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